청년전문가 유회중

역사와 청년의 만남 1화

끊임없는 개혁파 보건위원장 곽우성은 과거제도를 만든 고려의 쌍기다.

작성일 : 2017-07-02 16:57 작성자 : 유회중 기자

본 칼럼에서는 현시대의 청년들과 과거의 인물을 매칭하여 그들을 알아보는 칼럼으로 역사 속 인물과 청년문화포럼의 청년들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였던 박근혜 前대통령이 다시한번 최초로 '탄핵'을 당했다. 박근혜 前대통령의 탄핵과정에는 불통으로 시작된 온갖비리들이 가득했다. 국민들은 이를 참다 못해 개혁을 위해 촛불을 들고 하나둘씩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고 이례적으로 국론합작을 만들었다. 불통의 결과는 탄핵이였고 그 안에는 개혁의 미비함으로 인한 썩은물이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많은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국가인 신라는 골품제라는 변화를 거부한 제도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 골품제는 '인간은 태어났을때 부터 등급이 정해진다'라는 제도로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정해놓은 제도였다.

 

이러한 개혁자체가 불가능 했던 신라는 궁예에서 왕건으로부터 멸망이 되고 고려의 건국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신생국가였던 고려의 사회시스템은 부족함이 많았다. 당시 고려의 입장에서는 신라를 그대로 따라가자니 나라의 흥망성쇄는 정해져 있는 수순이였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자니 정보가 부족했다.

 

 

이때 등장한 외인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오늘날의 공무원제도를 만든 외인 '쌍기'이다. 쌍기의 첫 등장은 고려가 건국되고 3대 광종때이다. 원나라의 속국이였던 후주의 사신단으로 처음 모습을 나타낸 쌍기이다. 쌍기는 사신단으로 왔지만 무슨 연유인지 병을 핑계로 사신단과 함께 본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고려에 귀하를 해버린다. 이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냥 고려가 좋아서 귀하한 것이다'와 '광종의 스카웃이다'라는 2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한편 쌍기는 고려에 귀하하자 마자 광종에게 '올바른 관료들을 임명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도입하자'라는 혁신적인 제안을 한다. 당시 신라의 골품제의 영향을 받아서 관료들은 흔히말하는 낙하산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폐쇄적이였던 시대적 상황에서 말조차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반응은 예상했던대로 기득권층의 반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쌍기는 당시의 선진국이였던 중국의 수당시대부터 시행된 제도이며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관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립된 상황속에서 광종은 당시 신라로부터 썩어 문들어진 제도에 개혁을 위하여 쌍기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게 된다. 쌍기는 자신이 뱉은말을 결과로 보여주기 위해 첫 과거제도의 시험감독으로 참여하는 등 체계화에 전념한다.

 

그 결과 백성들에게 만족한 결과를 끌어내었고 과거제도는 보란듯이 성공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조선시대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는 공무원제도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의 핵심이였던 그의 커리어에 비해 생애조차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않다. 

 

 

고려 개혁의 중심에 쌍기가 있다면 오늘 매칭 할 청년에는 청년문화포럼 보건복지위원장 곽우성이 있다. 쌍기의 등장이 사신단이였다면 곽우성의 등장은 공식 청년활동가 모집에서 였다.

 

2016년 여름, 청년문화포럼은 본격적으로 몸짓을 키우기위해 일사분란하게 청년들을 모집하게 된다. 이때 실질적으로 행동대장으로 움직였던 것이 필자이다. 당시에는 '패션위원회의 재가동'이라는 큰 숙제가 있었다. 물론 청년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확실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청년이 곽우성이였다. 그는 당시 고민거리였던 패션위원회에 지원한 상황이였다. 그의 첫만남에서 '저는 패션학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에게 맠겨주신다면 재가동 뿐만아니라 패션위원회의 부흥을 이끌 자신이 있습니다' 한마디를 남긴다. 날카롭고 힘이 있는 모습이였다. 필자는 그 모습만 보고 속는셈 치고 그를 패션위원장의 자리를 빌려주게 된다.

 

그 후 곽우성의 첫 발표회 였던 청년문화포럼의 공식행사인 컬쳐쇼, 그는 당당하고 패기가 넘쳐있는 모습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모두 계획 뿐이였던 그의 발표였지만 '퀴즈식 발표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공유문화를 만들겠다'라는 발언이 신선하게 들려왔다. 당시에 곽우성이라는 사람에 대해 정보가 없었던 필자로서는 그의 대한 믿음의 부족과 무모하다는 생각으로 기대감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 컬쳐쇼가 진행되었다. 그는 필자를 놀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1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이 뱉은 퀴즈와 공유문화를 발표에 접목시킨다. 그의 시도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고 이러한 개혁의 시도는 컬쳐쇼의 새로운 발표문화를 만들었다.

 

 

그의 개혁은 컬쳐쇼가 시작에 불가했다. 작년 겨울, 청년문화포럼을 하나로 만들었던 최초의 지자체 행사인 '미리on크리스마스'에서 곽우성은 무슨 자신감이였는지 지자체의 청소년들을 패션쇼의 모델로 세우겠다는 선언을 하며 행사의 큰단락을 맡는다. 실제 거주지도 행사장이 아닌 노원구였던 그의 발언은 많은이들이 보기에 무모해보였다.

 

행사 당일, 그는 청소년 20여명을 이끌고 자신있게 행사에 나타난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가장 큰 이슈를 만들며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주최측은 두려움에서 시작된 자신감 결여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상황이였고 이는 지자체 행사상 유래가 없었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던진 메세지는 뚜렷했다. '조금만 변화를 주고 시도하면 안될 것은 없다'

 

 

행사를 끝으로 그는 자신의 꿈인 보건행정사로서 삶을 살고 싶다며 돌연 패션위원장을 사퇴한다. 동시에 보건복지위원회 제안서를 넘기는데 보건이라는 부분이 정말 애매해서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항상 청년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얘기를 하고있는 필자가 한 청년의 새로운 도전의 대한 불씨를 끄기에는 모순이 있다고 판단하여 받아들였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당시에 곽우성이기에 기대도 되었다.

 

보건복지위원회의 시작은 패션위원회 출신의 송경락의 복귀로 수월하게 갈 것 같았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인원이 문제였다. 보건이라는 카테고리에서의 청년들의 욕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판단한 것인지 '청문포 보건뉴스'라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힘든 올바른 보건문화를 기자형식으로 대중에게 알려주는 발표형식이였다. 참신한 시도였고 대중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그 결과 보건위원회는 첫 출범식인 컬쳐쇼에서 12개 위원회 중에서 3위를 거머쥐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개혁적인 모습은 많은이들에게 자극이 되고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현재 '보건행정가'라는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꿈을 목표로 잡고 달려갔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고려시대의 개혁을 현시대까지 영향을 준 쌍기,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로 청년문화포럼의 개혁을 이끌어낸 곽우성. 쌍기와 같이 미래에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될 지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든다. 앞으로 청년 곽우성이 어떤 행보를 보여 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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