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왕따였던 청년이 노량진에 창업 후 제일 먼저 한 행동

작성일 : 2021-02-09 12:15 작성자 : 김선재 기자

[열린사람들=김선재 기자] 전세계의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31임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3보를 걷다보면 하나의 임대문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신조어이다. 이런 상황은 안그래도 좁아진 취업의 문과 창업의 문이 더욱 좁아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오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번의 실수를 딛고 다시 한번 자신을 시험 중인 인물을 소개하고자 다름에 왕따를 당했지만 오히려 이를 살려 노량진을 제패했던 26살 청년 한동훈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대중적인 것보다 남다른 것을 좋아했던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어제 했던 만화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그는 타조알로 계란말이를 하기 위해 타조알의 유통처와 성분에 대해 얘기를 하는 등 매번 대화의 주제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취향은

이상한거 좋아하는 애

로 낙인이 찍혔고, 이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왕따로 지내게 됐다.

 

다행히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초등학교 친구들이 적게 간 학교로 입학하게 되면서 왕따의 이미지는 조금씩 벗어나게 됐다. 이때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요리인데 이는 그에게

한동훈이 만든 외식 프랜차이즈

라는 꿈을 키우게 됐다.

 

고등학생 때까지 학교가 끝나면 항상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레시피 만들기” 였다.

 

평범하게 인문계로 진학했던 그는 고3이 되면서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을 염려하여 잠시 공부에 열중한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일단 대학만 가고 성인이 되면 꼭 실현해야지” 라는 꿈을 품은 그였다.

원래 모든 일은 쉬운 게 없다고 했던가, 그는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재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다행히 3수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자신의 생각과 다른 환경이었다. 재수까지 한 그였기에 아제는 학점이 눈앞에 그의 꿈을 가려 놓은 것이었다.

꿈과 현실의 충돌 속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그가 탈출구로 찾은 것이 대외활동이었다. 학교만 계속 다니게 된다면 현실에 안주할 것 같았기에, 좀 더 넓은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생각이 정리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활동하게 된 대외활동이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이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한 낯 재수생 대학교 1학년 한동훈의 주변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포진되어 있었고, 심지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기업의 대표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다 싶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학교생활과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과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이 중 그가 가장 먼저 한일은 리더들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외식 프랜차이즈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점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리더십이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조건 리더들을 따라다녔다. 당시 그가 속해있던 청년문화포럼의 위원회는 ‘IT위원회였고 당시 본 위원회의 리더였던 형을 따라다녔다. 어떻게 인원들과 소통하고 관리하는지 그에게는 핵심포인트였다. 그리고 이를 직접 물어보며 배우기도, 때로는 어깨너머 메모를 하며 직접 이행해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보통 대학생이라면 학업에 더욱 열중해야 되는데 항상 자신을 쫒아 다니는 그를 보고 당신 IT위원회 리더가 그에게 의문을 가졌다.

너 왜 이렇게까지 나를 쫒아다니니?”이에 한동훈은 저는 외식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핵심 덕목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가깝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한다.

 

이를 대견하게 느낀 당시 IT위원장은 단체의 간부에게 이를 알린다. 그리고 간부는 그의 꿈이 허상된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테스트한다.

 

동훈아, 너가 진짜 외식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다면 일단 요리를 할 줄 알아야겠지? 근데 아무 요리만 하면 의미가 없으니 너가 한번도 안 먹어 본 요리를 한번 맛보게 해줄테니 너만의 레시피로 개발해봐” 라며 그를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한 곱창집에 데리고 간다.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곱창볶음을 맛본 그는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점을 먹자마자 간부는  너가 꿈이 외식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거면, 요리는 기본이겠지? 오늘 먹어본 거를 토대로 일주일 줄테니 직접 만들어봐. 단 유튜브, 블로그 참조하면 안된다.” 라고 그에게 처음 먹어본 음식을 아무 참고자료도 없이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구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그는 학교가 끝나면 마장동에 가서 곱창을 사와 집에서 무작정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걱정 반 설레임 반으로 한 가게에서 직접 시현을 하게 된다.

 

결과는 절반의 합격이었다흉내정도까지만 됐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또 미션이 날아온다. “너가 프랜차이즈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상품을 구성해봐. 2만원 내에서 누구나 끌리는 메뉴로

 

또 일주일이 지나고 그는 곱창+치킨 반마리+홍합탕 무한리필=19,800” 이라는 메뉴를 들고 나온다. 곱창의 맛도 다시 잡았다.

 

오케이. 한 달 동안 이 메뉴를 갈고 닦아놔. 너의 데뷔무대를 만들어 줄게. 노량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 온 것이었다. 후문에 따르면 그 간부의 작은 꿈도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재를 찾고 있던 중 한동훈을 알게 된 것이라고 훗날 밝혔다.

그렇게 2017년 탄생한 것이 노량진 한가운데 탄생한 한동훈의 첫 데뷔작 청년곱창 198”이다.

 

하지만 이 또한 미션이었다. 왜냐면 간부가 차려준 가게는 노량진 안에서 죽어가는 상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게에서 그가 처음 한 것은 마케팅이었다. 먼저 간판을 트랜드에 맞게 바꾸고 베너를 밖에 배치하고 일부러 곱창냄새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위치를 변경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간부에게 부탁했다.

온라인 광고 좀 부탁드려요” 이에 너가 광고에 필요한 거 짜서 오면 검토 후 도와줄게

 

이때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미션까지는 힘들 거 같은데..... 어쩔 수 없다 학교에 얘기하고 오후부터는 무조건 가게에 올인하자

 

그는 결심을 하자 마자 바로 학교에 찾아가 창업을 했습니다. 한번 뿐인 기회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다. 학교 다니면서 알아서 조절해서 해” 좌절감이 밀려왔다. 학교에서는 취업과 창업을 독려하지만 말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방법은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때가 학기 시작 전이라 시간표를 짤 수 있었기에 모든 수업을 오전에 배치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마장동에 가서 생곱창을 사왔고 가는 길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홍합을 들고 닭을 기다렸다. 그리고 새벽3시까지 장사를 하고 야간버스 안에서 광고를 짰다. 일주일이 걸렸다.

노량진 이색 맛집. 곱창을 먹으면 치킨이 같이오고 홍합탕이 무한리필” 그가 개발한 메뉴를 토대로 짠 가게의 슬로건이었다. 다행히 이는 통과가 됐고 광고도 시작됐다.

 

놀라웠다. 하루에 한테이블이 올까 말까한 곳에 10테이블이 방문하더니 웨이팅까지 생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치킨과 곱창을 함께 파는 곳이 주변에는 없었고 주변 상권 특성상 숭실대, 중앙대, 그리고 고시생들이 주 고객이었기 때문에 2가지 맛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것은 큰 메리트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점차 자리가 잡히고 그는 자신이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대외활동 인원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모든 생일과 각종 회식을 무료로 제공했다. 기회를 쟁취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에게 작게 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작지만 금액적으로 후원을 하게된다. 단체 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매달 20만원 이상을 찾아가 쥐어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도움 받은 것은 누군가에게 꼭 돌려줘야 된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주말에는 봉사활동에 거의 매주 참여하게 된다. 특히 실버세대를 위한 봉사활동이라면 항상 앞장서던 한동훈이었다.

 

이때 그는 또 하나의 꿈을 이행하고자 했다. 바로 “2호점” 이었다.  외식 프랜차이즈가 전국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그에게 안 좋은 소식이 날아온다. “군입대”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이행해야 될 국방의 의무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3달 전에 통보 식으로 날아왔다.

당시 22살이었던 그에게는 언젠가는 꼭 가야할 곳이 군대였다. 근데 하필 이 시기에 영장이 날아 온 것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 3개월. 먼저 새로운 가게를 알아봤다. 다행히 처음 도움을 줬던 간부가 도와줘서 혜화동 성균관대 앞에 2호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량진점을 맡을 사람을 구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군입대까지 2개월 남짓 남은 시간. 촉박했다. 위에서 따로 언급은 안했지만 그의 허드렛일을 도와 줄 인원이 한명있었다. 그에게 전반적인 운영 방법을 알려줬고 노하우도 전수했다. 그러다 보니 바로 군입대 날이 다가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입대 후. 훈련소가 끝날 무렵, 불행히도 인수인계 받은 사람이 운영비를 횡령하며 혜화점은 폐업수순을 밟게 됐다. 그도 군대에서 들은 소식이었다. 어렵게 일궈놓은 것이 한달도 안되어 망한 것이었다. 다행히 처음 그에게 기회를 줬던 간부가 도와주어 빚은 없이 2호점을 접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전역 후. 24살이 된 한동훈. TV를 틀어보니 백종원이라는 사람이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설레였다. 나도 다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군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요리를 연구했던 그는 복학을 앞두고 그 꿈을 계속 발전시켜나갔다. 그리고 2020년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복학을 해야됐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학교는 졸업해라라고 하셨기에 효도는 못해도 불효는 하기 싫었다. 그런데 기회인지 위기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학교 수업은 비대면으로 모두 전환된다. 그는 이를 기회를 여겨 더욱 요리에 매진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가스레인지 앞에서 레시피를 개발한 것이다.

 

코로나만 끝나라. 다시 시작한다” 그의 꿈은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온다. 바로 더스쿠프와 한국사회공헌협회가 주최하는 티토링캠페인이었다. 본 캠페인은 각 분야의 선구자 및 전문가가 해당 분야를 꿈꾸는 청년에게 장기 멘토링을 진행하는 활동이었다.

 

운도 좋았다. 1회 멘토가 피자알볼로 창업가 이재욱 대표였다. 바로 신청하였고 진짜 운이 좋게 멘티로 선정됐다. 그가 처음으로 만난

성공한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 였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들을 상세히 물어봤다. 감사하게도 피자알볼로 이재욱 대표는 그의 질문보다 더 깊숙이 진심을 담아 알려줬다.

 

그리고 아직 코로나는 완벽하게 종식되지 않으면서, 청년 한동훈은 오늘도 자신을 갈고 닦고 있다. 그가 외식프랜차이즈를 하고 싶은 이유에 최근에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고 한다.

 

저는 사실 배를 굶어 본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특히 청년들이 천원으로 하루를 버틴다, 한끼만 먹는다 이런 얘기를 뉴스를 통해서 자주 접합니다. 제가 외식 프랜차이즈를 꼭 성공시켜서 저와 같은 청년들, 그리고 청년이 될 세대들에게 도전하기 전에 버틸 수 없는 상황은 없게 도와주고 싶어요.”

26살 대학교 3학년 청년 한동훈. 한번의 실수를 겪었던 청년. 하지만 오늘도 그는 외식 프랜차이즈의 꿈과 이를 통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신념으로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청년 한동훈처럼 한번에 실수에도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를 돕겠다는 그 신념이 사회에 당연시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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