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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서 결승 전문가로 탈바꿈한 안세권, 그만의 선한 영향력 이야기

작성일 : 2021-01-20 16:46 작성자 : 한동훈 기자

 

2020년 수능.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사상 최초 12월 수능이 진행됐다. 거기다 일전에는 없었던 가림막이 책상마다 부착됐고, 수험생들은 필수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변수가 많았던 이번 수능, 수험생들의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요구됐던 만큼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졌길 바란다.

 

 

오늘 주인공은 전교 꼴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악가가 된 테너 안세권의 이야기이다.

 

 

안세권, 그는 1988년 7월 1일 땅끝 마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백반집을 운영하는 어머님 밑에서 자랐다. 한 인터뷰에 따르는 안세권은 자연스럽게 음식과 친해졌고 이는 건장한 체격을 만들어 주변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치가 컸다. 이 체격을 살려 그는 씨름 선수 유망주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씨름 초특급 유망주로 큰 무리 없이 지내오던 날, 중학생이 된 그에게 부상이라는 시련이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부상은 더 이상 씨름을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고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사춘기와 맞물려 방황기를 겪게 된다. 이때 그나마 그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노래였다. 노래를 부를 때면 잠시 나마 헛된 생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노래에 빠져들게 된 그는 밴드부 보컬까지 맡으며, 주변에서는 "우리 동네 가수 안세권"으로 통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3이 된 안세권.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래부르는 것에만 흥미가 있던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새로 부임한 음악선생님이 그의 노래를 듣게 된다. 음악선생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지금 노래부르는 사람이 누구니?"라고 묻는다. 반 친구들은 안세권을 지목했고, 음악선생님은 그를 찾아가 "너의 목소리는 그냥 썩히기에 너무 아깝다"라고 성악을 제안한다.

 

당시 성악은 생각 자체를 안 해봤던 안세권이기에 생소한 성악 자체를 정중히 거절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악=고비용" 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의 집안 또한 넉넉한 가정 형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꼭 살리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일주일 동안 '안세권 설득'에 나선다. 선생님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5주 동안 그를 찾아와 설득했고, 이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성악가 안세권의 첫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어머님의 백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레슨비 조차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음악선생님은 광주에 거주 중인 한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주말마다 그를 데리고 광주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성악을 배울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궂은일을 하며 레슨비를 대신했고, 방학 때는 완도와 광주를 왕복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며 성악을 배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성악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 성악의 매력에 매료됐고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때 음악선생님은 그의 꿈에 기름을 부었다. "세권아, 서울대가자" 전세계 천재,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전교 꼴찌를 도맡아 하던 그에게 서울대는 상상 범위에 조차 없는 학교였다.

 

"그래, 서울대 한번 가보자!" 왠지 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리고 꼭 이루고 싶었다. 이는 순식간의 안세권의 생활패턴을 바꿔 놓았다. 난생 처음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한 학기 만에 꼴찌였던 그가 전교 20등까지 성적을 수직 상승 시킨 것이다.

 

자신에게 꿈을 만들어준 선생님들. 이후에 언급되지만, 아마도 그가 자신과 같이 꿈을 가진 친구들을 위해 무료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 이때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그는 서울대는 떨어졌다. 그러나 경희대학교 성악학과에 당당히 합격하며 진정한 성악인의 길에 한층 더 다가가게 된다.

 

 

시간이 흘러 2012년.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온다. "안녕하세요. 안세권 씨. 코리아갓탈랜트2 제작진입니다. 2008년 기사보고 전화드립니다.출연 가능하실까요?"

 

위에서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2008년 처음 성악을 시작할 무렵, 한달 만에 성악 전국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게 된다. 그의 활약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이를 본 코리아 갓 탈랜트2 제작진이 그를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누구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출연 제의였지만, 그는 선뜻 출연을 결정하지 못했다. 2012년만 하더라도 성악하는 사람이 오디션 방송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은 "딴따라"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성악인의 길을 가는데 있어 막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고민이 됐다. 그러나 고민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TV나오는 아들이 되어 어머님께 효도해야겠다' 하나였다.

 

땅끝 마을에서 태어나고 줄 곧 그 지역에서 자라온 그는 그 마을의 정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TV에 나오는 것 만으로 큰 화제가 된다. 이를 알고 있었던 안세권은 '어머니가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 하나만으로 코리아 갓 탤런트2에 출연을 결심한다. 그리고 코리아 갓 탤런트2 제작진의 섭외가 옳다는 것을 보란듯이 증명했다. 처음 나가는 오디션프로그램에서 그는 당당히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결승무대는 본인의 모교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진행하게 됐다.

 

코리아 갓 탤런트2 중 안세권

 

그런데 이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안세권의 결승무대를 도와주기 위해 후배와 친구들이 나섰고 이 모습을 본 경희대학교 성악학과는 '뭐야? 너네 딴따라 도와준거야?'라며 그들에게 징계 아닌 징계를 내린다. 그리고 복학을 앞둔 안세권에게 교수들은 '딴따라는 복학을 거부한다'라며 그의 복학을 받아주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안세권이 학교 분위기를 다 망쳐놨다' 이것이 교수들이 그의 복학을 받아주지 않던 이유였다. 성악인의 꿈을 아직 완성시키지 못했던 그는 교수들을 직접 찾아가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부탁한다. 그제서야 겨우 복학이 가능해졌다. 

 

 

코리아 갓 탤런트2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그의 능력은 자연스럽게 전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이를 발판으로 아시아 갓 탤런트와 팬텀싱어2에 동시에 출연하게 된다. 그런데 아시아 갓 탤런트 결승전과 팬텀싱어2 준결승 무대 날짜가 겹치게 된다. 고심 끝에 아시아 갓 탤런트는 하차하고 팬텀싱어2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안세권은 당당히 팬텀싱어2 결승전까지 오르며 3위라는 기염을 토해낸다.

 

'씨름 선수 출신 시골 청년의 도전기, 그리고 팬텀싱어2 3위' 이때 각종 포털사이트와 언론에서는 그의 기록들을 재조명한다. 이러한 여론의 관심은 '성악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딴따라'라는 인식 또한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안세권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활약 후에 '너도 세권이 처럼 될 수 있어. 능력을 썩히지 말고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봐.'등의 성악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팬텀싱어2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된 안세권은 행사 섭외 1순위로 손꼽히며 자신의 능력을 전국에 더욱 알리게 된다.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행사가 '평창올림픽 결단식'이 있다. 그는 전세계인 앞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애국가를 불렀고, 이는 전세계 브라운관으로 안세권을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외에도 독도알리기 캠페인 독도음악회 '꿈꾸는 독도', 평화 통일 콘서트 '통일을 부르다' 등등 다양한 곳에서 섭외되며 활약한다.

보통 인기를 얻으면 '연예인병'을 가장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병이었다. 유명세를 타자 그가 제일 먼저 한 활동이 바로 사회공헌 활동이다. 그 첫번째는 '재능기부를 통한 제자 양성'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성악가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그는 과거 자신과 같이 성악에 재능이 있는데 꿈조차 엄두를 못 내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숙식을 제공해가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재능기부 활동으로 많은 꿈나무들을 명문대에 진학시켰다.

 

그의 활동은 웃긴대학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업로드 된 안세권 관련 글에 그가 도와준 제자가 경희대학교 합격 인증샷을 올리며 베스트 게시판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해당 커뮤니티 링크이며 제자의 인증샷 댓글은 내려간 상태)

 

제자 양성 외에도 자신의 재능을 살려 문화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7월에 진행된 열린음악회 '하모니'가 있다. 본 공연은 한중 간에 문화교류를 위한 행사로 중국 국제우딩학교와 국내 브릴란떼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KBS홀에서 공연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 공연은 코로나19 팬더믹 전까지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2018년 5월. 성악가로는 최초로 한국사회공헌협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는 홍보대사 위촉 후에 협회 내 사회공헌 활동에 직접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엔터테인먼트를(브릿지 엔터테인먼트)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성악 꿈나무들을 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어려운 시절은 모르고 건방지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안세권은 그 반대 인생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재능이 만개하자 그 재능을 통해 선항 영향력을 전달 중인 안세권. 그가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요?' 라며 자신의 철학을 투영된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이 지금의 안세권을 만들었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따뜻한 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성악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이겨낸 후 그의 선한 영향력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