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전문가 이혜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1편

작성일 : 2017-07-13 17:17 작성자 : 진로전문가 이혜진

나를 찾는 사람들은

20대 사회 초년생인 직장인이거나 아니면

대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학과나 학교생활이 맞지 않아 방황하는 대학생

거의 이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어떤 것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지에 대해 실제상황처럼 볼 수 있다.

 

최근에 방문하는 어린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종종 ‘자학트렌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박봉(적은 월급)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고

나이가 들수록 안정감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위치가 불안해지고

삶이 빠듯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사축’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 단어가 생소하기도 하고 말도 약간 어려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웠다.

 

뜻을 보니 ‘사축’이란

가축처럼 회사에 사육 당하며 일만 하는 직장인을 뜻하는 말이란다.

아마 요즘 같은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취업한 청춘들에게

" 회사 = 갑 / 회사원 = 을 " 로 규정짓고

회사(갑)가 시키면 회사원(을)은 무조건 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빗대어 표현된 말일 것이다.

나에게 ‘사축’이라는 단어는 어감도 그렇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어원을 좀 알아보니 이 말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기엔 청년 무직자들이 직장인들을 조롱하려고 만든 말이었으나

여러 가지 내용으로 다양한 패러디되면서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적인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에

공감하는 청춘이 많아지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사축동화’라 불리며 인기를 끄는 이 짤막한 동화가 있었다.

이름부터가 참 자극적이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주었다.

동화라고 하니 예전에 한창 유행했었던 잔혹동화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 동화는 나에게 잔혹동화 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잔혹동화는 픽션이지만

사축동화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진짜 ‘팩트’이기 때문이다.

 

사축동화는 동화내용을 모티프로 회사의 부당대우를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 이면에 동화가 말하고자 하는

냉혹한 현실이 마음에 닿아서 읽으면서도 참 마음이 안타까웠다.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몇 가지 사축동화를 소개하겠다.

“인어공주 버전”

「마녀님, 저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회사로 이직해와,

대신 너의 목소리를 받아가마」

인어공주는 정사원이 되었지만,

월급이 내려가고 야근수당은 나오지 않았고,

휴일도 사라졌습니다.

목소리를 잃어 노동청에 신고하지도 못하게 된

인어공주는 사회의 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성냥팔이 소녀 버전”

"소녀는 성냥을 팔았습니다.

월급은 세전 130만원.

월 200시간이 넘는 수당 없는 추가 근무.

영하를 넘나드는 가혹한 노동 환경.

소녀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을 피우자,

회사는 상품을 무단 사용한 소녀를 고소했습니다."

“백설공주 버전”

왕자님은 죽은 백설공주가 누워있는 관을 찾아내,

백설공주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납품, 내일까지다」

백설공주는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그것을 본 왕자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리고 죽어있던 동안은 급료 안나온다」

그걸 들은 백설공주는 정말로 죽어버렸습니다.

“양치기소년 버전”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진짜 블랙기업이 나타났습니다.

소년 근로자는

「블랙기업이 나타났다!」라고 소리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평만한다」「노력이 부족하다」「자기책임」이라며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블랙기업은 근로자를 모두 잡아먹어버렸습니다.

“빨간모자 버전”

「할머니의 귀는 왜 그렇게 커다래?」

「그건 말야, 매일매일 고객들의 클레임을 듣기 위해서란다」

「할머니의 눈은 왜 그렇게 커다래?」

「매일매일 13시간씩 컴퓨터를 보기 위해서란다」

「왜 일을 그만두지 않는거야?」

「그건 말야 65살이 넘지 않으면 연금이 안나오기 때문이란다……」

“금도끼은도끼 버전”

산신령

「네가 떨어뜨린 건 연봉 1억의 힘든 일인가?

아니면 연봉 3천만원의 편한 일인가?」

사원

「연봉 3천만원의 편한 일입니다」

산신령

「정직한 자로군, 너에게 두 가지 일을 모두 다 주도록하지.」

사원

「두 일을 다요?」

산신령

「그리고 두 일을 이렇게, 합치면, 연봉 3천만원의 힘든 일이 된단다.」

 

아마도 이런 동화가 유행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약육강식의 논리가 담겨져 있어 더 뼈져리게 마음에 와닿는다.

 

나도 안다.

충분히 누구나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런 상황 속에서는

그럼 “누구나 이렇게 힘들 게 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생각으로

그냥 무기력하게 꿈도 희망도 뒤로 하고 살아가는 게 맞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해주고 싶다.

 

멈춰버린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들어 줄 만큼의 강력한 전기자극처럼

아주 단호하게 외치고 싶다.

왜냐면 이러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과 연구 결과 그리고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나는 들었고 직접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하면 100% 해결할 수 있냐고

확신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렇다. 난 누구나 100%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이글은 보는 누군가는

“당신이 신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라며 거짓말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100%라고 말하는 데 있어서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전제 조건이 따른다.

“ 스스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 ”

너무 단순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다.

 

우리 집 근처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산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 스스로도 나름 풍경도 괜찮고 경치도 볼만하고

심지어 오르는데 1시간이 안걸리는 산이니 운동이나

산책하기에 딱 좋은 그런 산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도심에 살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 정도의

산이 있다니 좋겠다는 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요즘같이 땅만 있으면 즐비하게 건물을 짓고 있고 있는

삭막한 도시 환경에 그 산만 가면 자연을 느낄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 행운아’라는 부럽다고 까지 했다.

 

그리고 진짜 봄이 되어 꽃이 피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여기저기서 소풍과 나들이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주 보인다.

예쁘게 차려입고 들뜬 모습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 우리집 뒷산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유명한 산이었구나’ 새삼 느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막상 바로 옆에 사는 나는 한 번도 이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올라갈 힘이 없어서? (아직 그 정도 나이는 아닌 듯 싶다^^;)

시간이 없어서? (바쁘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 내는 것은 가능하다!)

운동을 싫어해서?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산책하는 것이 습관이기도 하다)

그냥 나는 단순하게 한 번도 그 산에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물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마음을 먹은대로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먹지 않으면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확률 0%가 된다.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건

=그 일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계속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계속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다짐한 것들이 결국에는

내 미래가 되어 참혹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든 자유다.

하지만 그 생각대로 내가 되어간다는 것!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함부로 쉽게

마음대로 생각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이 글을 읽기 전에

“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다. ” 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삶이

아니 작은 시각이라도 조금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 바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거니와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화되거나 설득이 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건축해 가는 과정에서 조금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설계가 나갈 때 참고했으면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며

그러기에 이렇게 미리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편부터 전개되는 진짜 본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최소한의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꼭 필수적 요소만 간단히 정리한 것이니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뭔가 거리감을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인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상관이 없지만 대부분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좀 위축되거나 지루해지는 경향도 있을 수 있다.

나에게 강의를 듣는 친구들이나 컨설팅을 받는 친구들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전문적인 내용들을 처음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게 나의 장점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이유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천천히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따라오길 바란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