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상부상조하는 사회의 모습, 임플로이같은 임플로이어]

작성일 : 2021-08-03 10:35

주변 사람들이 다들 너무 임플로이 같다고들 말해요. 고용주가 그런 태도를 가지면 안된다고들 자주 지적하세요.” 문새벽 대표의 말이다. 9년여 간의 대기업 생활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고 나와, 최근 주목받는 포펀랩(포더펀더멘탈랩)을 창업한 문새벽 대표는, 아직 고용인으로서의 시각으로 인간관계와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를 지적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너무 직원들 생각에 초점을 맞추면 일이 산으로 간다고들 하시죠. 대표가 되었으면 대표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데 직원 마인드을 가지면 위험하다고요.” 문새벽 대표는 가고싶은 느낌이 드는 회사’,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생각, 이로운 생각들로 보너스가 가득한 그런 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원칙과 기본, 뼈대가 있고 그 다음에 즐거움이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큰 태스크겠지만요.” 문새벽 대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큰 재벌기업과는 다르게, 언더독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정말 만들고 키워낸 회사로서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이후 문새벽 대표는 일에 따른 즐거움이야말로 회사에 가장 필요한 동력이자, 이것이 기업으로서 벌어들이는 돈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진정으로 행복한 기업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9년을 보내며 스스로 정립한 경영철학이다.

문새벽 대표와 함께하는 사람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믿지 못하실수도 있겠지만, 지금 포펀랩을 함께하시는 분들 전부 우연처럼 운명처럼 만났다고 생각해요.” 포펀랩의 김영석 국장은 숨고라는 플랫폼을 통해 문새벽 대표를 만났다. “회사를 다닐 때 막연하게 글을 잘 써야 뭔가를 할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마침 SK케미컬에서 마케팅을 맡고있다가 염증을 느껴 나온 김영석 국장은 작가 활동을 하다 문새벽 대표의 글쓰기 과외를 맡았다. 2년여간의 교류를 통해 서로를 잘 알게 되었을 때 쯤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자인과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현 팀장은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난관에 부딪힌 문새벽 대표가 우연찮게 연락이 닿은 학교 후배였다.

내부 활동에 인싸적으로 활동하는 후배가 아니어서 학교 생활할 때는 두,세마디 나눠놨을 뿐인데, 프리랜서로 일하고있던 김동현 팀장과 우연찮게 카톡을 하게 됐죠.” 김동현 팀장과 홈페이지 제작을 하며 호흡을 맞추다보니 신뢰관계가 형성됐고, 한팀으로 일하면 보이지 않던 큰 그림이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함께 일하게 됐다고 한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쓸 수 있는 말.]

모든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창업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묻자 문새벽대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인들한테도 자주 말하는 부분인데, 회사 다닐 때도 가끔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 일이지만 제 일을 하고있는 것 같을 때 힘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회사 쇼파에서 자는 일도 부지기수지만, 그럼에도 힘들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맞아 떨어지더라고요.(웃음)” 대기업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불안정한 반석 위에 올라있는 기분이지만, 불안정함에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느낌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팀원들이 함께 있다 보니, 난관에 부딫히더라도 뭔가 할수 있다는 느낌. 내가 좀 부족하다 해도 이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지는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다보니 앞으로 나아가는게 힘들지만 힘들지 않아요.” 문새벽 대표가 말을 이었다.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내가 왜 회사 이름 밑에 있어야 하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제가 직접 대표가 되어 움직이다 보니 대표로서의 부담이 느껴지죠. 부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고용인들을 방패삼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기꺼이 화살을 맞아 줄수 있는 고용주가 되고 싶다는게 문새벽 대표의 바람이다.

 

[유한한 현실에서 무한한 세계로]

고용인으로만 있다보면 자신의 역량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어느 부분에서 어느 수준의 역량을 발휘할수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포펀랩의 창업계기를 묻는 말에 문새벽 대표가 그렇게 운을 띄웠다. “대기업에서 영업관리를 하다보니,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에너지를 받고 이런 장점이 있었던 반면에 9년정도가 지났을 때 쯤 7,8년 시점에서는 도돌이표, 계속 비슷한 일들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볼 수 있겠죠. 나의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 회사에서 스타트업 컴퍼티션을 진행했는데 여기에 지원해서 3개월 동안 사업계획서를 짜서 경쟁에 참여해 봤죠.” 문 대표는 영업사원 6팀 중 2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됐었는데 당시에 진행했던 스타트업 프로젝트에서 사회에서 순환중인 어떠한 파편화 된 정보를 가지고 하나의 아이템화 하는 작업이 스스로 흥미로웠다고 한다. “당초 기획된 것과는 꽤나 다른 아이템이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그때 당시에 사회에서 원하는 아이템에 준하는 것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당시 할인점에서 저희 회사 아이템이 다른 회사에서 나오는 것을 보다보니 가능성을 느꼈고 흥미로웠어요.” 이러한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이후 포펀랩을 창업했다고 한다. 포펀랩의 로고를 보자면 4자이면서 9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질문에 문새벽 대표가 대답했다. “49라는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하나의 로고로 두 가지 숫자를 내포하려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7이라는 숫자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77이 곱해졌을 때 49가 나오고 49재가 유한한 현실에서 무한한 세계로 간다는 의미가 있더라고요. ‘포펀더맨탈랩은 사칙연산이라는 뜻입니다. 사칙연산을 통해 유한한 가치들에서 무한한 행복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브랜드 연구소. 그만큼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공식을 찾아내는 회사이고 싶은 마음에서 로고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어떤 것들은 마이너스가 됐을 때 행복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더해졌을 때 행복할 수 있죠. 그런 것들을 찾아서 브랜드화 하고 향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의 49로서 포펀더맨탈랩의 설립 아이덴티티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위기는 곧 기회다. 코로나 시대에서 기회를 찾는 사람들]

문 대표에게 코로나 시대의 창업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라고 물어봤다.

“‘코로나 시대는 창업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라고들 말하죠. 그런데,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이때만큼 잘 어울리는 시기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위기에서 기회를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큰 기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를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사업을 못 했을테니까요.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문이 열린다고들 하잖아요?” 어떤 식의 기회를 보고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새벽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매장에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없는 것이 사실이죠.” 오프라인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은 경쟁력을 잃은 시대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 지금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기회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국가에서 창업자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거죠. 사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이지만, 그 기회를 100퍼센트 활용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후일을 기약해 지금은 온라인 사업을 하고, 동시에 판데믹 사태가 진정되어 국가가 안정화될 때 오프라인 공간에서 통할 사업을 구상 하는겁니다. 판데믹이 늘어지는 만큼 리스크는 커지겠지만, 기회를 붙잡을 확률은 높아지죠.” 문새벽 대표의 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국가에서 사업자들에게 지원하는 돈이 100이라고 보면, 이 돈이 어디로 증발하는게 아니고 계속 순환중인거에요. 가장 호재인 것은 온라인 사업부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거죠. 돈이 이쪽으로 순환중인거지, 자신의 앞에 당장 돈이 돌아가는 게 안보인다고 해서 100이라는 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 베팅을 하고 국가 정책에서 기회를 보고 도전중입니다.”

 

[비영리에서 찾는 영리]

 

문새벽 대표는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그 계기를 물어보았다.

비영리, 영리라는 말이 좀 웃긴 것 같아요. 직접 돈이 나오지 않는 활동을 비영리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비영리 활동으로 남들을 만나고 돕는 행위에서 나오는 가치가 저한테는 영리거든요. 돈으로써는 비영리인데, 행복으로써는 영리죠.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은 이렇게 비영리활동의 인식을 영리활동과 다름없게 바꾸는 거에요. 지금은 화폐라는 개념이 꼭 캐쉬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죠. 온라인에서 주고 받는 화폐도 화폐의 일부인데 선한 행위들이나 가치를 나누는 행위들 또한 영리라고 못 볼수 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의미로서 인식을 바꿔 비영리 활동의 인식 자체를 영리활동이나 다름없게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기획중이에요. 간단한 발상으로는, 지자체나 국가와 결합하여 봉사 포인트를 민간에서 샵 등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 그 활동 자체가 비영리이면서 동시에 영리활동일수 있겠죠.” 문새벽 대표는 그론 것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으며, 이런 취지를 같이 공감하고 그것을 노동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는 브랜드를 기획할 때 트렌드를 이끄는 것이 큰 업체들이었죠. 예를 들어, 어떤 라면이 출시되면 비슷한 라면들이 동시대에 비슷하게 나오죠? 여기나 저기나 비슷하게 다 나오죠. 그리고 그게 식탁에 올라와요. 대기업들은 할인을 해서 경쟁성을 갖추니까, 기업들이 트렌드를 만들어 버렸던 거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해요. 예전에는 마트가 유통의 메인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죠. 하지만 이제는 채널이 다양해졌어요.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마케팅을 병행하면, 큰 업체와 1인 마켓이 같은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있죠. 그것을 알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겁니다. 유통의 흐름이 바뀌면서 1인 미디어의 경쟁력이 생겨났어요. ‘진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들어주기 때문에, 브랜드도 예전에 회사에서 만들었던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나오는 브랜드, 사람들의 선택에서 나오는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래서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것이고, 상황이 브랜드가 되는것이고,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이 비영리 활동이지만 제 직업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을 기회가 생겼죠. 앞으로도 시대가 더욱 바뀌어 나갈 것이라 생각해요.” 문 대표의 계기에는 또한 전 회사와의 관계도 있었다.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만 갖춘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아직 진행중인 부분이 있다보니 민감하긴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되어서 노동청에 고소를 한 상태고, 현재 해고로 처리된 상태라 해고 무효소송또한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부분인지라 저 자신의 입장으로만 말하자면, 프로젝트 진행 중에 과정에서 회사 내 스타트업의 취지를 가지고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는데, 당시에 프로젝트 담당자(팀장)와의 갈등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태도의 문제를 지적받으면서 종국에는 회사 내 기밀 유출 같은 이유를 들어 제 발로 걸어서 퇴사하는 상황을 만들었죠. 식사나 회식을 저를 따돌리고 한다던지, 회의시간에 저한테 아예 말을 안 건다든지, 이동을 못하게 한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그냥 말로 들어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겪어보면 정말 힘듭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된다고 하면 힘들 것이라 생각하구요. 일이고, 나 자신의 삶과 엮여있는 곳에서 혼자 고립무원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변에 다른 팀도 있고, 보고도 해봤지만 회사 자체에서 이 상황을 쉬쉬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진실이 가려지고 제가 매장당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결론이 나와야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전 회사의 9명 정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한 상태입니다. 이달 말까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해고 무효소송과 직장 내 괴롭힘은 별개의 사안이지만, 각 기관에서 서로 연계해서 다른 기관 상황을 보고 결론을 내겠다는 핑퐁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어요. 일개 개인의 입장에선 지금 당장 보호를 받아야하는 입장인데, ‘별개의 건이 아니고 여러가지로 봐야한다.’ 식으로 나오니까, 저 자신도 직장인으로서, ‘이것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도 해나가는 과정이지만 누구라도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비용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데, 일개 개인은 자기 사비로 진행해야하고,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실업급여도 못 받게 막는다던지 이런부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것 때문에 국가에 지원을 받게 되는 상황까지 갔고 신용등급도 1등급에서 6등급까지 떨어지게 됐죠.” 문 대표는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을 통해 회사와 대등한 관계로 붙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소비자 권익연대를 직접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김태원씨(기타리스트)는 여자한테 잘 보일려고 기타를 쳤다고 했죠. 저 역시 일개 개인으로는 힘이 없다 보니영역을 높여서 내 억울함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을, 그러니까 사실 제 개인 사유로 시작한 활동이 맞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느끼면서 스스로 의미가 생겼죠. 이제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런 활동을 더 크게 해야한다는 책임, 지금 이 사회의 사회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시대를 살고있죠. 이 시대에서 피해 입지 않고 희생당하지 않고, 누구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같이 즐거울 수 있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그런 단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문 대표는 마지막으로 웃으며 덧붙였다. “, 소비자 권익연대 활동을 하면서 소비자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소비자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죠. 브랜드디렉터로써 이렇게 쉽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없거든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브랜드]

문 대표에게 브랜드 디렉터로서 생각하는 브랜드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브랜드는 첫인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가 몇 초만봐도 알아.’ 이렇게들 이야기하죠. 이 말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에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걸 보는 사람에겐 그게 전부니까요. 그렇기에 모든 것을 고려해야합니다. 불렀을 때 불려지는 느낌. 모습으로봤을때 보여지는 형태, 그리고 어딘가에 배치됐을때 어울리는 느낌, 확정성을 띌지, 종합적인 결 등을 고려해서 첫 인상을 확실하게 줄 수 있을테니까요. 모두를 고려해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브랜드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고려되고, 결합되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막연한 동심의 공상에서 현실의 기획자로]

기억나는 게, 7살때가 88올림픽 때였죠. 국가가 흥하고 있을 때 저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났고 디지털 거쳐서 스마트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다 가지고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문 대표는 웃으며 말하곤 나름의 강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아날로그 시절의 기억들은 혼자서 지냈던 시간들이네요. 누나 둘이 있고 막내. 이렇게 보면 사랑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나랑 따로 놀았기 때문에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2년 터울로 있다보니까 누님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많지는 않았죠. 아버님이 어렸을적에 숭일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는데, 아버님도 기획과 관련된 일들을 좋아하시는 분이시고, 당시에는 컴퓨터 초창기 시대였기 때문에 아버님이 유학 1세대로 미국을 가셨어요. 당시에는 미국에서 대학만 나와도 교수를 했었는데, 40이 넘어가면 국립대학교 교수가 불가능했다고 알고 있어요. 광주에서 태어나셨고, 광주에서 생활하려고 하시다보니... 원래대로면 남부대나 전남과학대에서 교수 생활 하셨을텐데 당시에는 이렇게 될지 모르셨을거에요. 누나들은 여자들끼리만 어울렸고, 어머님도 과외도 하시고 하다보니 자주 부재였죠. 그래서 혼자 있었어요. 당시에 그렇게 혼자 지냈던 시간들이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당시 주위에 잘살았던 친구들인 것 같네요. BYC 전무를 하셧던 것으로 기억하는 친구네 아버님이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 놀러가면 선물세트 같은것들이 막 쌓여있었어요. 장난감도 많고, 놀러가면 고기전 굽고 있고, 로얄살롱 차를 타고, 또 다른 친구 아버님도 독일 유학파 출신이셨고 잘사는 친구들, 멋있는 친구들이 좀 많았던 것 같네요. 그런 친구들 집에 놀러가보면 멋진 장난감들도 많았고, 이런 친구들이랑 교류를 하다보니, 트렌드를 보는 눈이 그때 키워졌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유학가신 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님이 미국에 들르셨을 때 선물을 많이 사오셨는데, 한국에 닌텐도가 출시 5년 전에 이미 사오셔서 미리 가지고 놀았었고, 휘어지는 연필같은 것들, 신기한 것들 가지고 오면 어릴 때니까 관심의 대상이 됐죠. 저도 소위 있는친구로 비춰졌던 것 같고, 그렇게 쌓인 인간관계가 저를 이루는 데 영향을 많이 줬다고 봐요. 그 땐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전기모터 달고 움직이는 미니카 같은 걸 보면서 막연하게 어린아이들이 생각하고 꿈꾸는, 그러니까 현실적인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고...(웃음) 매체에서 등장하는 과학자는 멋진 기계를 만들고 세상에 없는 것들을 기발하게 창작하곤 하니까, 멋있어 보였죠. 하지만 실제 과학자는 수십년을 걸쳐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때는 그런 현실들을 몰랐으니까 막연히 과학자가 되면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보니까 그 당시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과학자라는 직업이 기획자와 많이 닮아있지 싶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기획자는 어릴 적 꿈을 이룬셈이니 꿈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문 대표가 어떤 과정을 밟아 기획자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어렸을 때는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줄 알았어요. 디자인과나 예술 쪽은 어렸을 때 상을 잘못받으면 스스로 자신이 잘한다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 디자인과로 진로를 정하게 되죠. 주변에서 잘한다니까 그쪽으로 빠지게 되는 케이스라고 볼수 있는데... 저는 광주에서 서울대 제일 많이 보낸다는 고려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공부만 하는 학교였어요. 딱히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는것도 아니고, 분위기도 그저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항상 야구가방에 만화책 4, 50권씩 가지고 다니면서 만화만 보고 다녔죠. 그림 그리는 건 잘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 재밌겠다, 이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대학교 때 성적 따라서 공대를 가게 됐어요. 그런데 매일 막걸리나 마시고 그러니까 별로 재미도 없고 흥미도 동하지 않아서 바로 알바자리찾고 학교를 안 나갔어요. 그러다가 서울대병에 걸려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죠. 결국 어렵사리 디자인과를 갔는데, 막상 가서도 나한테 맞는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디자인 자체가 흥미롭지가 않아서 타과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 식품 같은 교양수업이 훨씬 맞는 느낌이 들었죠.”

문 대표에게 기획자로서의 첫 걸음을 밟은 시기가 언제였는지 또한 질문했다.

디자인과를 나왔는데 미안하게도 디자인을 거의 안했네요. 디자인에 많은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마지막에는 학점을 따고 그래야하다보니 그제서야 기초를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지금도 써먹네요. 디자인은 뭔가를... 그러니까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내는데, 그런 데에는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주제를 주면 저와 결합하여 표면화 시키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요. 디자인과를 졸업하면 보통 디자인에이전시에 들어가는데, 그 당시에 학교 프로그램으로 카네기 리더십과정, 1기로 없어졌지만 한 달 동안 온종일 오후 6시까지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에게서 전공무관으로 하는 공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취업박람회 가보니까 진짜 전공무관으로 뽑는 공채가 있더라고요. 그 회사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영업관리를 뽑아야 하는데 많이 뽑히는 쪽은 정해져 있었고...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회사를 들어가게 됐는데 회사에서 영업관리 활동을 하던 와중에, 우연히 매장을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기다보니 CJ에서 추구했던 방향을 당시 회사에 차용을 했죠. 대개는 회사에서 주는 이미지를 출력해서 설치하는 정도도 안 하지만, 그걸 하나의 창구로 만들어 본 거에요. 나 자신이 이미지를 기획한 카피, 메시지를 가지고 공짜로 매장을 꾸려볼 수 있었죠. 그게 재미있다고 판단되었는지 기록물로 남고 성공사례로 발표되고 인정을 받고, 그러다 보니까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기획이란 것과 만나는 기회가 생겼던 것 같고. 당시에 제한적이었던 것은, 회사 제품을 가지고 기획했던 것인데 지금은 아무거나 기획해도 되는 상황이니 훨씬 더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죠.”

문 대표의 회사 생활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실제로는 서른세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고 봐도 무방한데, 다들 좀 간과하는 게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아니고, 서른세살에 공채 신입 통과한 사람있냐고 물어본다면 낙하산 아니면 없을 거에요. 이 자체에서 자신감이 있었죠. ‘능력이 있다라고 스스로 생각되고. 회사에서 연수를 보내 3주 정도 모의경영게임을 했을 때도 있었어요. 그땐 회사에서 까마득한 선배와 같이 작업을 할 정도였죠. 신입사원인데 제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회사 전체 행사에서 활용하는, 그런 일들도 있었어요. 짧은 시간에 거의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네요. 그때 당시엔 저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그때 느꼈던 것은 저 자신에게 디자인 역량이 크게는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상대조차 안 된다고 느꼈어요(웃음). 제품을 기획하고, 회사 선배들과 조인해서 한 시간 안에 판매할 제품을 만드는 일도 있었어요. 당시 저희 팀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팀이었는데, 당시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죠. 대개는 라면을 가지고 기획을 했는데, 저희는 과자를 가지고 당시 트렌드에 맞게 신사컨셉의 패키지를 만들어서 아침, 점심, 저녁의 풀코스 식사의 개념을 가지고 스낵을 만들었어요. 샐러드의 시즈닝이 뿌려져 있는 과자, 디저트로는 초코가 시즈닝 된 과자, 식감이 중요하게 여겨져서 적합한 식감을 갖춘 하나의 제품으로 만들었죠. 그건 압도적으로 1위를 했어요. 쉐프컨셉으로 무대까지 짰는데 압도적인 성과를 못 내는것도 웃기긴 하죠. 그런데 기획이나 마케팅 방향을 거의 다 혼자 잡아주고 정작 앞에 나서는 걸 그렇게 좋아하질 않아서 상은 동생들한테 양보했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에 와서 보면 앞에 나가서 좀 할껄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도 몰라주니까요.(웃음)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들어오다보니 연수원까지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디자인과를 나왔다보니 어느새 밤낮이 바뀌어 있었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선배들끼리 가장 빨리 퇴사할 것 같은 신입사원이 누굴까 내기했을 때 1등으로 꼽혔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고 의미를 두고 있는 작업이, 백산수라는 걸 출시했었는데 회사에서 홍보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을 때였어요. 신입사원이다 보니 외곽지역에서 영업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 열렸거든요. 저는 페스티벌을 가본 적은 없지만, 페스티벌 하면 거기엔 부스도 있고, 여기에 홍보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업관리라는 직책에 좋은 점을 꼽자면, 책임이 부여되지만 책임질 수 있는 안에서는 쓸 수 있는 권한들이 있다는 점이죠. 이런 상황들을 엮어, 부스를 넣어 홍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당시 1212월에 입사했고 수습 기간을 갖고 자리배치 받는데 2개월이 걸려 21일부터 실제 근무를 했다. 수습 기간동안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서 스스로 돌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들을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그때는 선배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는데 어줍잖은 후배가 나대는 것처럼 보였을거에요. 조언을 구하려고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관심도 없고, 반응도 없었고요. 회의시간에 얘기하라 해놓고 아무도 안 듣더라고요.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다들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친해진 선배들과 어떻게 해볼 수 없을지 논의해보고, 거기 있는 총괄 감독님을 직접 만나서 제안서를 주고 부스를 받게 됐어요. 처음엔 회사비용으로 전부 처리가 될 줄 알았는데 나중엔 제 개인 돈까지 쓰게 되더라고요. 23일 동안 부스 설치하고, 학교 후배들 모아서 투입시키고, 예산 부족해서 결국 제 돈으로 사서 사람들한테 백산수 나눠주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백산수라는 제품을 알릴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때만해도 나대는 후배가 아니꼬와서 선배들이 안 도와줬나보다 생각했는데 2,3년 지나고보니 그런걸 회사원들이 하지 않는 것 뿐이더라고요. 대부분 사람들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었을테니, 그럴만도 하죠. 9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봤을때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웃음)

 

[브랜드라는 집합, 영감의 가시화]

백종원 거리처럼 포펀랩 시티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가진 꿈을 묻는 말에 문 대표는 야심차게 대답했다. “브랜드라는 것의 가시적인 목표점중에 하나죠. 그 이후의 일은 너무 추상적이고.”웃으며 그렇게 말하며 문 대표는 현재 포펀랩에 우선되어야 할 과제들에 집중해 설명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유니콘 기업이라는 당면의 목표부터 해결해야겠죠. 지금 부차적으로 기획 중에 있는 것은 커피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딜리버리 디카페와 캐쥬얼 고깃집이에요.” 현재 포펀랩은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문 대표는 대답했다. “전체적으로는 브랜드 기획과, 사람, 제품, 문화콘텐츠 관련으로 지엽적으로는 컵부터 하나의 큰 브랜드까지 일괄되게 브랜드를 기획하고 있고, 그것을 회사의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년까지 메가스튜디오를 런칭할 예정이구요. 메가 스튜디오는 시민들이 만드는 방송국 개념으로 젊은 친구들이랑 만드는 파트가 있고, 저와 같이 3,40대들이 만들어가는 방송국, 젊은 방송, 5천만이 한번씩 주인공이 되는 부분이 하나 있고 마지막 사업은 포 펀더멘탈 랩(포펀랩) 프랜차이즈 사업부가 나오게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죠.” 문 대표에게 딜리버리 디카페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펀랩FNB 사업부인데, 이렇게 커피시장이 큰 곳이 한국밖에 없고, 집중해서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이다보니 커피를 꼭 먹어야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스팀팩처럼. 그런데 그렇게 커피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이 커피를 너무 많이 먹게됐죠. 다들 카페인을 과다섭취하고 있거든요. 마시다보면 복용량이 늘어 3잔이상 4잔이상 이렇게 먹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커피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담배 대신 금연껌이라도 씹는 것처럼 디카페가 나오게 됐죠. 그러면 아예 커피가 없는 카페를 만들어보자라는 발상에서 카페인 없는 홍차를 메인메뉴로 한 디카페 딜리버리를 생각하게 됐어요. 거기에 한국형 브런치를 추가하고, 차후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도록 두부, 김치샐러드 등의 메뉴를 기획중이에요. 한국의 식문화가 외국에 알려지고 있는데, 일본식도 이제는 옛날것이 되어서 글로벌하게는 한국식당이 트랜디한 식당으로 바뀌고 있죠. 그 컨셉에 맞춰서 딜러버리 디카페에서는 음료가 메인. 사이드 메뉴는 배달의 형태를 띄게 하고.한국형 브런치라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컨셉으로, 식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퀄리티 높은 차를 제공하는 쉼터로 쓰일 수 있는, 그런 브랜드입니다. 현재 장소는 구해져있고, 인테리어와 방향성을 잡고 있는데 기획하고 있는 방향성은 조리시설을 최소화하고 남은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보려고 해요. 저는 네일, 헤어의 프로등을 기용하는게 어떨까, 그 분들이 오프일 때 프리로 디카페에 예약제를 제공해서 손님들이 네일도 받을 수 있고 머리도 자를 수 있게, 다양한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 해주니까 고객도 좋고 전문가들도 오프 때 수익이 창출될 테니 좋겠죠.” 외식 창업이 포펀랩의 브랜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브랜드라는 걸 디자인쪽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 방식으로 보면 디자인 안에 속하는 일부지만, 지금 만들어 놓은 브랜드랩은 브랜드속에 포함되어있는 요식업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요식업도 브랜드이고, 방송국도 브랜드라고 보면, 브랜드가 상위개념이라 이 개념에서는 어긋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그런 방향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요식업도, 영상팀도 나올수 있는 것이고 브랜드가 상품의 부속품처럼 생각되는것과는 완전히 반대 개념이죠. 브랜드 연구소라고 명칭을 붙인 이유도 그런 것들을 하나로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연구소라고 지은 거에요.”

 

[태어나는 순간 이미 몫은 다했다. 즐겁게 놀아보자.]

많은 일을 기획하면서 또한 실행하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은가? 라는 질문에 문 대표가 대답헀다. “실제로 늘 힘들죠. 하지만 회사생활을 할 땐 이것보다 훨씬 적은 만남이었음에도 훨씬 피로했고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사람이라 이런것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은 사람을 만날때 에너지를 얻고 충전이 되죠. 건강해지려면 운동을 하라는 얘기는 그게 마이너스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실제로 플러스이니까 그러는거죠.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소비인 것 같지만 에너지 소비가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람을 플러스로 만들어 주더라고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에너지가 생긴다. 한참 예전에 소개팅을 많이 받았을 때가 있었죠.(웃음) 어떤 때는 막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가도 마음에 안 드는 상대가 나오면 피곤해지고, 한번은 엄청 피곤한 상태였는데 맘에 드는 사람이 나오니까 새벽까지 있게 되더라구요. 사람이라는게 그렇게 구성되어있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계속이라도 같이 있고 싶고.”

문 대표에게 그런 사고방식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 질문해 보았다. “뜻이 있다.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한 판이 벌려졌으면 좋겠다. 큰 뜻이자 저의 삶의 모토입니다. 더스쿠프라는 잡지에서 컬럼니스트 활동을 하면서 남기고 싶은 말 같은 것들을 의뢰했을 때 태어났을 때부터 할 몫은 다했으니까 즐겁게 놀아보자라는 얘기를 드렸었어요. 신해철씨를 엄청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 흔적은 매력적이라 생각했었는데, 신해철씨가 콘서트장에서 했던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가 할 몫은 다했다라는 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에요. 모두 아둥바둥하면서 뭔가를 이루려고 발악하는데, 그저 태어난 순간부터 할몫은 다했다고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제 즐길일 밖에 남지 않았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이 이 시대에 잘 맞다고 봐요. 통제받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네 사회인들이 생각하는 안정이라는 단어가 잘못해석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정이라는 것은 불안이라는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것이 안정이니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안정이 아니죠. 이런 방식으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하고 싶어요.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

 

[청년의 끝자락에서 청춘들의 대표를 꿈꾸며]

창업자로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최근에 늦게나마 대학원을 가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추천서를 받을 일이 있어서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가게 됐는데, 매체도 많고 혁신적인 것도 끝없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에, 젊은 친구들은 다들 자신감에 넘칠거라고 생각하고 여쭤봤죠. 교수님은 학생들이 오히려 제 때보다도 더욱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되어 있고, 잘 된 것과 안 된 것들의 차이, 안 됐을때의 비참함을 쉽게 접할 수 있다보니까 두려움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알아버리니까, 시도해보기도 전에 실패했을때의 비참함을 알아버려서 시도조차 못 한다는 느낌. 용기 자체를 못내는 것 같다고. 거기에 두려워하는 청춘들에게 제가 하고싶은 말은, 안 죽는다. 안 돼도 또 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서른세살에 첫 취업을 하지 않았나. 그래도 들어갈 회사도 많다. 눈높이 얘기 떠나서 요즘엔 능력 위주로 뽑는 회사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안 돼도 그런데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되면 누구든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지 않나. 이런 시대에 한 번도 자신의 것을 못 만들어본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은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회사에 들어갔을 때인 것 같고 두번째는 현재다. 서른 세살이었던 내가 했듯이 다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차리는 것도 마흔인 나도 하지 않았나. 언제 어디서든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찾아온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청년들이 두려움이 있다면, 필요하면 우리 회사에 연락해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용기 한 방울을 나눠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많이 나누어주고 싶다. 뭐든 해도 된다. 너무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문새벽 대표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을 물어보았다.

시간이 지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이야기 할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닌 상황에서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어렸을 때 40이란 나이는 모든 것이 끝난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지금쯤 애도 있을꺼고 안정적인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 모습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는데, 사회를 겪음으로 알게 된 것은, 나보다 더 늦게 시작하는 분들이 계실 테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서도 뭔가를 하는데에 두려움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단언컨데, 자신을 잃지 않고 뭔가를 계속 준비하기만 해도 언젠가는 알을 깨고 나오게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깨고 나오게 될 시간을 누군가가 정해주지는 않을 것이지만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거죠. 그것이 자기 잠재력이라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깨고 나왔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꺼라고 말하고 싶어요. 조직이라는 존재 안에서 자신이라는 걸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어느 회사의 대리, 사원, 과장이 아니라, 인간 누구누구라는 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날은 자신을 잃을 수도 있을거에요. 턱 밑까지 나앉게 생겼다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버거울수도 있죠. 하지만 그러더라도 모두 잃지 않고 중심으로 항상 돌아와야 합니다. 한번 잊거나 놓치더라도 다시 잡으면 됩니다. 그 순간 놓아버리거나 포기해버리면 결국 자신을 잃게 됩니다. 저는 39세라는 청년의 끝자락에서 청춘들의 대표를 꿈꾸며 포펀랩을 창업했죠. 언젠가는 사회 구성원 각자의 생각들이 깨지지 않고 잘 결합되어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의 행복만을, 개인의 즐거움만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고 모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개개인이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여 완성되는 공동체. 서로를 배려하기에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착취 없이 즐거움이 가득한 기업과 사회의 모습을 바랍니다.”

청춘의 마지막 대표로서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문새벽 대표였다.

 

일반 이전 기사

  • 이전 기사가 없습니다.